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께서 지난 6월 1일 “제49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 선교사수련회”에 강사로 오셔서 선교사님들께 “여러분 왜 성령충만 받으려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은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때 성령충만의 증거로서 방언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확실한 성령충만의 증거로 나타났던 방언에 대하여 오늘날 교회가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방언에 대하여 너무 편협적이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경향은 고린도 전서 12-14장에 근거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을 은사로만 취급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특히 예배 시간에 방언을 금한 것은 고린도 교회 특수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방언을 자제 시킨 이유는 예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해당하는 특수 상황적 언급을 다른 성경(사도행전)에서의 방언에 대한 언급에 적용하여 확대 해석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왜곡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나타난 방언에 대한 의미를 약화 내지 축소시킬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오늘날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에 발생한 특수 상황과 관련한 바울의 방언에 대한 언급을 일반화 하여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로 나타난 성령강림 사건(들)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